default_setNet1_2

제22강 시편 37편 여호와를 기뻐하라

기사승인 2022.01.28  08:53:26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좋아하는 색깔들도 있지 않아요. 어떤 색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정규씨 어떤 색을 좋아해요 저는 보라색 좋아합니다. 약간 우울한데 오늘 선생님도 보라색 넥타이를 하였어요
 
기뻐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가 기뻐지지요 누군가에게 우리들이 적극적인 선을 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 존재의 분위기가 맑고 깨끗하고 또 환할 때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고 있는 것이어요
 
맞지요. 여러분 내가 아무리 심오한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늘 낯을 찌끄리고 그냥 저분 보면 우울해져 그러면 마나고 싶지 않아 일전에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내 마음이 약간 우울했거든요.
 
밖을 보고 있는데 배달원이어요 음식 배달원 그 분이 가방을 이렇게 들고 아마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이겠지 기분이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발레 할 때 발레 동작이 있지요 이것을 들고 점프를 뛰어서 착착 이러고 경쾌하게 걷는 것이어요.
 
그것을 보면서 내 마음이 갑자기 환해 지는 것이야 저분 굉장히 행복한 일이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었을까 궁금해 지는 것이야 존재로서 누군가를 궁금하게 하고 그럴 때 괜찮은 것 같아요.
 
어린아이가 예컨대 혼자 지나가면서 방긋 방긋 웃어요. 궁금하지요 가서 묻는 것이야 너 무엇이 좋아해 뭐 좋은 일 있어 요즈음 애들은 안 그럴 것 같은데 옛날 애들은 주머니에 행복한 것이어요.
 
내 속에 있는 게 밖으로 나오거든요.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지요. 그래서 순교자인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게 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 그의 내면에 있는 것이 밖에 나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 즐거워하는 사람을 보면 참 유쾌합니다. 텔레비전에서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일에 정말 일가를 이룬 사람들 달인들 이 사람들을 보면 특색이 있어요. 자기 일을 정말 좋아해 마지 못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신나게 하는 것이야
 
힘겨운 노동이 아니라 자기를 거기에 온전히 집어넣어서 즐거운 것이어요. 여러분 이 속에 사탕 하나만 있어도 아이는 행복해 하는 데 이 속에 하나님 모시고 있는 사람은 더 기뻐해야 하지 아니할까요
 
우리는 찬송을 부르면서 우울해 무엇이냐 하면 이 속에 확신이 없어서 그러지 않을까 우리 민족이 한의 민족이기에 십자가 노래 나오면 좋아한다고 해요 어쩼던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아요. 현실이 어렵더라도
 
1. 시편 37: 1- 11
여러분 이 시를 보면서 앞 부분만을 읽었숩니다 마는 다른 시들과 다르다 하는 느낌이 혹시 있습니까? 이 시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 같습니다. 굉장히 예리한데요
 
여러분 스토리라고 하는 것은 이야기 하는 것은 발단이 있고 전개가 있고 이렇게 가지 않아요 어떤 고백을 이루기 위해서 전개해 나가는 흐름이 있어요.
 
그런데 이 시는 서사 구조가 없어요. 나열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시의 느낌은 어떻느냐 하면 잠언 구절을 읽는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요 짤막 짤막한데 교훈이 되는 말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느꼈다 한다면 안목이 는 것이어요.. 이 시인은 어떤 시라고 하면 이것 전문 용어로 아크로스틱 포이엠이라고 하는 데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알파벳 시이어요.
 
그러니까 이 경우는 두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이제 쭉 영어로 이야기 하면 에이비 시디해서 첫 글자나 마지막 글자를 만드는 것
 
또는 앞 글자를 다 따서 연결해 보면 사행시 이런 것 하는 것 처럼 이제 라인들을 만들어 내고 앞 글자를 따보면 특정하 시가 되어요. 그런 것들을 알파벳 시라고 하는 데 이 시가 바로 그러한 시입니다.
 
사실은 이 번역에서 안 들어나지 않아요 그것이 안타까움이 있지요. 일부러 알파벳 순서대로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암기하기 좋으라고 그렇지요 암기하기 좋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암기하기 좋으라고 이제 그렇게 합니다.
 
잠언의 교훈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거든요 잠언의 이야기를 내가 의도를 밝혀 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여기 배치하고 이렇게 하지 않고 요즈음 사람들이 이야기 하면 렌덤이야 그냥 갖다고 배치를 해 놓은 것입니다.
 
두 절 간격으로 히브리어 알파벤 순서로 되어 있어요. 이 시가 교육적인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 가지고 37편을 관통하고 생각이 없을까 하면 그렇지는 않아요
 
무엇이냐 우리의 현실은 가슴 아픈 현실인데 악인들이 번영한 것처럼 보여 그렇지요 시편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이 그런 것이지요 어찌하여 악인들이 잘 됩니까? 후손들까지도 심지어 더 괴로운 것이 죽을 때도 편안히 그들은 죽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때도 있는 것이어요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안 되어요 예수 믿으면 다 잘돼 다 잘 될 수 있는데 안 될 수도 있어요. 예수 믿으면 병 안 들어요 들지요. 듭니다.
 
상훈씨 대답이 강력하게 신속하게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시지만 예수 잘 믿어도 병 앓을 수 있습니다. 또 사업이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야기 하지요. 신앙 간증하면 사람들은 어려웠는데 잘된 이야기 병 들었는데 나은 이야기 가난했는데 전락했는데 높은 데 올라간 이야기 이런 것 듣고 사람들이 아멘 아멘 그래요
 
우리는 어떤 간증도 해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했는데 어려움이 생겼어 이상하게 내 속에 자유가 생겼어 그렇지요 하나님께 병 낫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 했는데 하나님 안 들어 주셨어 이전에 보지 못한 것 내가 보기 시작했어 이런 것도 간증이 될 수 있지 않아요
 
여러분 이런 것들도 간증이 될 수 있지 않아요 이 간증이 한국 교회에서 내가 원하는 이루진 것만이 간증이 될 때 사람들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수단으로 삼기가 쉬어요 그렇지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 그런 것도 간증 거리가 되어야 되는 것이지요 내가 실패한 이야기 이런 것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이 해외 출장을 자주 하시는 분이 있어요 일년에 몇 달씩을 해외 출장을 하셔요
 
그 장로님이 한번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했어요 해외 출장을 가고 그렇게 분주하게 다니는데 어느 날 잠자리에 들려다가 문득 내가 이렇게 세상을 헤메고 다니냐 생각하니까 가슴이 북박쳤어요 침대에서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찬송가가 떠올랐습니다. 길도 없이 거친 저 들판에 갈길 못 찾아 헤메는 그 찬송가가 있어요 마치 자기의 처지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찬송가를 반복하여 들려주면서 자기 내면속에 찾아온 평강 이런 것을 이야기 했어요
 
그 분의 외적인 삶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를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다고 하는 것 이 거친 들판 같은 곳에서 그리고 나니까 고아와 같은 자기의 삶이 이제 더 이상 고아가 아닌 삶이 되는 것이어요 자유가 유입 되었어요
 
여러 가지 경험들이 있겠지요 그러나 잘된 것 만이 고백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런 고백도 좋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열심히 애 썼더니 내가 어려워 졌어 그런데 행복해 여러분 초대 교회 교인들이 그랬지 않아요
 
부활하신 주님과 만나고 성령을 만나고 밖에 나가서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붙잡아다가 다시는 그 이름으로 전하지 말라고 사도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 이름을 위하여 기뻐하였다
 
행 5장 41절 매를 맞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 그 이름 때문에 내가 매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어요 진자 복은 그런 것 아니어요.
 
자유 세상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유가 내 속에 유입이 되는 것이어요. 믿음의 보람은 그럴 수 있다 악인들은 번영하는 세상이라고 하여도 낙심하지 말아라 그 악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제거될 것이고
 
여러분 현실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러분 자식들에게 현실은 엄혹한 것이야 너 어렵더라고정직하게 살아야 돼 이것이 정상적 부모가 아닙니까 이 시는 현실이 하나님 뜻대로 살면 위로를 주기 위한 시라고 볼 수 있어요
 
제일 37편에서 중요한 구절은 1절입니다.
이게 아주 핵심 메시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지요 두 가지를 금지하고 있어요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아라
(2) 둘째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때문에 힘들지요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요. 아 저 사람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그렇게 말할 때도 있습니다. 또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바라보며서 우리들이 시기할 때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금지합니다. 영어로 이야기 하면 비코스 포 왜냐 하면 쓸대없는 소리 했네
2절이 그 이유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이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금지의 이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8절부터 9절 보더라도 똑 같은 구조입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왜 분을 그치라고 말하느냐 하면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땅을 차지할 것이다
 
금지는 이유가 있어요. 이렇게 구조화 되어 있는 것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우리가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정말 많이 벌어집니다. 우리의 이성이 작동되지 않고 우리의 합리성 가지고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있어요
 
그 때마다 우리는 세상이 왜 이래 하나님은 무엇하시는 것이야 그렇게 말할 때가 있지요 그런데 이 시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현실이 불합리하고 현실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합리하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라
 
오히려 자기 줌심을 확고하게 붙잡고 나아가라하고 말합니다. 신앙은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자는 그런 현실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욥기 1장 9절에 사탄이 하나님에게 불평 거려요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께 잘하겠어요. 하는 일 마다 잘 되게 해 주시니까 욥이 그러지요 이것이 사탄의 도전이지 않아요. 진정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보상해 주기 때문에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아니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보상 안해 주어도 괜찮아요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일이고 이렇게 사는 게 내 행복이기에 이렇게 살 것입니다. 보상 때문이 아니라 흔히 사람들이 주님 내가 주일날 날마다 예배 참석하고 십일조 안 떼 먹고 열심히 하니까 아셨지요. 그렇게 하면 안 되어 이렇게 딜이야 그것은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시 쉬어요
 
일이 뜻대로 안 되니까 십일조 항상 연결을 시키는 진자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거래하는 마음 그 마음을 버려야 돼 믿음은 여러분 이게 참 조심스러운 표현이는 한데요 그저 표현일 뿐입니다.
 
내가 특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폄하하기 위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사람들이 쓰는 이야기여요 신앙과 상인 근성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상인 근성은 무엇이지요 하나도 안부치고 파는 것이라고 늘 이득을 계산할 수밖에 없지 않아요 내게 이득이냐 아니냐 내가 이득이 되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악행자 악을 행하는 불의를 행하는 운명을 보여 주고 있는데
 
2절 그들은 풀 같이 베임을 당할 것이다
이것이 9절과 10절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11절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의 이야기는 팔복에서 나오지요 온유한 자의 복 온유 그러면 온은 따뜻함이지요. 유는 부드러움이지요. 따뜻함과 부드러움입니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땅을 차지합니다. 어떤 인과 관계가 있나요 여기에 요즈음 보면 온이 아니라 냉 강한 사람들이 땅을 다 차지한 것처럼 보이지요. 거꾸로인 것 같아요
 
자 그런데 이게 어떤 이야기냐 하면 이 땅을 뜻하는 단어가요. 이게 흥미로운데 이 땅을 humus (호모스)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것은 부엽토를 뜻해 온유라는 단어가 땅이라는 단어가 뜻이 같아
 
부엽토는 나무 잎이 땅에 떨어졌다가 다 해체되고 썩어서 기름지게 된 거름이지요. 이것이 부엽토지요
 
가만히 보면 절묘합니다. 땅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땅은 자기의 터에 필요한 것을 다 주어요 식물에게도 주고 다 주지 않아요 그리고 자기의 기반에 살고 있던 살아 있는 것들이 죽으면 다 받아 들여 자기 속에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지요 다 해체헤서 영영분 만들어요. 또 필요하면 다 주어요 온유한게 그런 것이어요.
 
정말 온유한 사람이라고 보면 받아 주어요 받아들일 뿐 아니라 주는 것이어요.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항상 다가가면 쨍쨍 소리가 나는 사람이 있어요. 품이 없어 거기 다가가면 짱하고 부딪혀 그런데 안아 주는 사람이 있어요 누구와 함께 살랍니까? 어쩼던 그런 것이지요.
 
그러니까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온하고 유한 이들이 여러분 생명력이 길어요. 그 사람이 그래서 춘추 전국 시대에 현인인 노자도 이야기를 합니다. 딱딱한 것은 죽음에 가깝고 부드러운 것은 생명에 가깝다 그랬어요
 
여러분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마는 나이가 많아지면 다 뻣뻣해 집니다. 그런데 애기들 보세요 애기들 얼마나 부드러워요 애기들에게 매혹되는 부분이 발 뒤금치야 얼마나 부드러운지 몰라요.
 
그러니까 세상이 어떠하든지 간에 너무 낙심하지 말고 그런 온유한 자에게 살 권리를 주신다는 것 믿고 살라는 것이어요 어쩼던 시간이 많이 갔네요 믿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고 맡기는 것이야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고 사는 것이어요.
 
그리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어요. 왜 나는 보상 안해주십니까 늘 이렇게 살면 그 삶이 행복할 수 없지요. 하나님 믿어도 나는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내 행복이어요 그분을 기뻐하고 사는 것이어요. 그렇게 살 때 우리들이 땅을 차지하게 된다
 
2. 12절부터 22절까지 보실까요.
이 대목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의인과 악인을 대조놓고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을 대조했습니다. 세상에 칼 같이 의인 악인 이렇게 대조할 수 없습니다.
 
히틀러 같은 사람도 고전 음악 애호가이고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요. 여러분 고전 음악 사랑하면 사람이 착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요 꽃을 사랑하면 사람이 다 좋을 것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요. 꽃을 너무 사랑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있는데 레옹 영화이야기여요
 
어쩼던 의인과 악인을 나눌 수 없어요. 우리 속에는 의인도 있고 악인도 있지요 나는 항상 의인이고 두 존재로 보면 될 것 같아요 우리 속에는. 악의 충동도 있습니다. 선의 충동도 있습니다.
 
인디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어요 두 마리의 강아지가 우리를 선하게 두 개가 있어요. 다리 긴개하고 뚱뚱한 개가 있다고 합시다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어쩻던 싸움 잘하는 개가 이기는 데 싸움 잘하는 개가 이기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주인이 밥을 잘 주어서 힘이 있는 것이지요
 
내 속에 두가지 충동이 있어요 선을 행하고 하는 충동도 있고 악을 행하는 충동도 있어요 누가 이기느냐 하면 주인이 밥을 많이 준 존재가 이긴 것이지요.
 
이 시를 읽으면서 의인이야기 나오면 자기 이야기처럼 보이고 악인 이야기 나오면 그 사람 이야기 처럼 보이고 그러면 내 속에 다 있어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요 결국 의인은 하나님이 세워 주시지만 악인은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칼이 그들의 양심을 찌를 것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질 것이고 그럼에도 불고흐고 삶을 똑 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이 단락에 마지막 대목이 22절 보니까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질 것이다 땅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또 나옵니다. 이 시에서 굉장히 중요한 모티브가 땅을 차지하는 이야기이구나
 
3. 23절부터 31절까지
여기에는 의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의인에 주어지는 복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데
23절 24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길을 정하시고 그는 넘어지나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이렇게 되어 있지요
 
새번역은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어쩌다 비틀 거리는 것이 아니고 늘 비틀거려요
 
저는 이 구절을 너무 사랑해요 왜냐하면 내 인생의 주제가 비틀거림이거든 왜냐 하면 늘 확고 부동한 사람이 위험해 여러분 배도 탁 서 있으면 넘어지기 쉬어요. 어떻게 해요 뒤둥 뒤둥 이랴야 배도 안 넘어가지 않아요 비틀 거린다는 살아 있다는 것이야
 
우리도 실족해 이 시인이
23절 우리가 걷는 길이
24절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어쩌다 비틀 거리는 아니고 늘 비틀 거리는 것이어요
 
비틀 거시는 우리를 보고 하나님이 못 난 놈 하지 않는다는 말이어요 우리는 비틀 거리며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야 그렇게 신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어두운 세상에 살면서 믿음의 확신이 회의로 전락할 수 있어요
 
이것이 우리들의 적나나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분명히 신뢰하는 것은 우리가 비틀 거려도 우리가 넘어지지 않는다 넘어진다는 것은 절망에 빠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넘어지게 하지 않으신다.
 
나는 이 구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행복해 집니다. 우리가 비틀거리는 것을 하나님이 죄로 규정하고 만약 그런다면 우리가 어떻게 견디겠어요 깜깜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이 진토임을 기억하셔요. 그래서 정규야 그게 너지 그런데 내가 너를 사랑해 그러지요. 이게 그동안 내가 성경에서 만난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셔요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을 볼 때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왜 내 자식 보는 것처럼 좋은 지 몰라 방황하지 않는 모범생들을 보면 가슴 아파요 너무 모범생들 움직이지 마 그러면 안 움직이는 모범생들 우리 가슴 아픈 기억이 있지 않아요.
 
그런 기억이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냐 하면 방황할 여지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왜냐 하면 방황해야 중심을 잡기 때문에 더 깊은 곳에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믿음은 회의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아 그래 그리고 우리를 붙들어 주신 것이야 비틀 거려도 비틀 것린다고 넘어져 우리는 믿을 수 없어요. 생각 났어요 아이가 아장 아잘 걸으려고 하는 데 가다가 넘어지고 가다가 넘어지지 않아요 그 때 엄마가 아슬아슬하게 쳐다보고 있거든요. 우리가 그렇게 걸어갈 하나님이 뒤에서 보고 계신 것 같아요
 
빈센 고호의 그림 가운데 첫 걸음이라는 그림이 있어요 잘 알려지지 않는 그림인데 아빠가 집 사립문 같은 것을 열고 아기가 아빠한테 오니까 무릎을 꿇고 아이를 기다리는 것이야 처음 애가 첫음 걷는 그 시간은 내가 사랑하는 그림이거든요
 
애가 넘어져도 다시 시작할 줄 알기에 아빠는 기다려 주는 것이야 하나님이 그런 것이야
그리고 이제 이야기 합니다. 교훈적인 시이니까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복에 대하여 이야기 하거든요
 
하나님이 의인을 버리지 않으신다 보호해 주신다 실족하지 않게 하신다 하여 주십니다. 의인의 자식들이 의인이 버림받거나 그 자손들이 어려움 겪지 않는다고 했는데 우리는 많이 보았지요. 이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교훈적인 시이기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지요
 
4. 32절부터 40절
이 대목은 악인과 의인들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앞에 반복된 이야기 이거든요 이 단락의 핵심은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는 권면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여호와의 도를 바라고 지키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삶이 되어야 하는데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네요 세상이 이렇게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어요
 
그런데 세상이 어떻게 보이느냐 하면 악인들이 이만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선인이 이만큼 처럼 없는 것 처럼 보여요 실지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지는 선한 사람들이 악인들 보다 많습니다.
 
우리 눈에는 이렇게 보여요 결국 이렇게 보이는 세상은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악인들의 음성이 크고 이렇게 커 보여요 그러니까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데 믿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악인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그 속에 그냥 그 논리에 빠져서 사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 유쾌하게 탈주해야 합니다.
 
나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야 악인들이 우리에게 조직의 쓴 맛을 보여 주겠다고 위협을 할 때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 나는 이렇게 안 살 것이야 철학 개념에서 나는 그렇게 안 살아도 돼 유쾌하게 탈주하는 것이야
 
이게 무엇이냐 하면 그들이 장악하는 영토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이것을 탈 영토화 그랬어 그 땅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그리고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정말로 바르게 공동체를 이루어야돼 그것을 재 영토화 그래 다시 어떤 공간을 이루어 가는 것이지요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에서 아까도 이야기도 했지만 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그래서 시편 37편을 근거로 해서 내가 평창에도 땅을 사야 돼 이렇게 하면 안돼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결국은 이런 세상에서 이 사람들이 눈에 보이도록 점점 크게 만들어야 해 재 영토화 해 가지고
 
그래서 결국은 이 온유한 사람들이 마음 따뜻하고 그리고 부드러워서 사람들에게 많은 여백을 주고 결국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따뜻함에서부터 태어나지 않아요 닭이 알을 품지 않아요.
 
따듯하고 발가지고 이렇게 돌려서 골고루 그것이 온유함이지요.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요 그렇게 선한 의지를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결국은 이 땅에서 많이 눈에 보이게 될 때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지요.
 
세상은 속절없이 흔들립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그 하나님 믿고 세상에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야 확고하게 그러나 우리에게 어떤 믿음이 있지요 조금 흔들리고 주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신다는 믿음이 있지요
 
노래 하나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요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를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저작권자 ©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default_setImage2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