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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강 18편 여화와는 살아 계시니

기사승인 2021.12.04  10: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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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고 계시다 그렇게 이야기 했지요. 옛날 소설에도 그런 것이 있지요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쥐도 알고 나도 알고 세상이 모두 다 아는데 부정해 버리는 그런 일들 비일 비재하지요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요.
어떤 때 좋아요? 억울할 때 어떨 때 부담됩니까? 나쁜 짓 할 때 질릴 때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다 이것이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1)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시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든든하지요
 
(2) 또 하나는 하나님이 일일이 보고 계시다고 한다면 부담스럽지요
의식하고 산다는 것은 요즈음 여러분이 한 꽁트를 보면서 생각나는 게 어느 학자가 우리 사회뿐만 아이라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이후에 세계 상황을 투명 사회라고 하는 말로 설명을 하는 것을 보았어요
 
투명하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요. 사실은 투명해야 되지요 사회가 투명사회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도덕적 기반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해요
 
그러니까 솔직히 이야기 해 정직히 이야기 해 어느것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투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신뢰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을 택합니다.
 
에스 엔 에스를 통해서 날마다 자기 근황을 올립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내가 어디에 가 있는 지 심지어는 내가 어디에 가 있는지가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 내가 예를 들어서 목동에 와 있으면 내가 여기에서 전화를 한다든지 그러면 에스 엔 에스에 글을 쓰면 내가 목동에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아요 이것이 부담되지요
 
이것이 어떻게 보면 투명 사회라고 하는 것은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어요.
그럴 때에 우리가 어떤 깊은 사색이 가능할까요.
연기하게 되지요. 누구의 눈길 앞에서 연기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이제 불행한 삶인에 우리의 문화가 깊이 가지 못하고 마치 연기하듯 피상적인 삶에 머물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참 고통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신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우리를 투명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없는가 지켜보시면서 억울한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다 하는 것이지 벌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잘못하나 둟어지게 바라보는 하나님이 그런 존재는 아니다 그런 이야기이지요.
 
만약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면 부담스러워서 어떻게 살겠어요 하나님 제발 내 버려두세요 그렇게 말해야 할는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신다 이것이 힘이 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금방 이야기 한 대로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많이 겪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우리가 함께 공부하려고 하는 시편 18편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 사람의 든든함을 보여주는 시입니다.
 
오늘 시는 시편 18편이 50절까지 있지요. 이것을 다 읽으면 너무 길것 같아서 오늘은 부분 부분을 읽어 가면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시가 18편의 제사를 보니까 굉장히 길어요 표제가 그렇지요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그래놓고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그리고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를 때에
 
정말 길지요 표제가 그러니까 다윗과 관련된 시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시편 18편하고 거의 유사한 성경이 한 군데 있습니다.
그게 어디이냐 하면 사무엘 하 22장입니다.
 
거기에 보면 다윗 임금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삶을 쭉 돌와봐요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는지 다윗의 승정가와 나옵니다. 사무엘하 22장이 승전가이거든요 그 내용과 거의 유사합니다.
 
시편 18편은 그러니까 다윗의 시라고 하는 것 받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은 이 시가 다윗의 시일 수도 있지만 다윗 이후에 나온 시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너무나 큰 어려움이 인생에서 자기를 괴롭혔었어요 그 어려움이 인생에서 그 괴로움 끊임 없는 도우심을 통해서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이야기여요 개인의 이야기입니다. 나의 이야기여요 고통을 받았던 개인의 이야기인데 이것이 개인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이기만 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모두가 겪고 있는 보편적 경험이지요
 
고통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개인적 경험을 무엇으로 만들어 내고 있느냐 하면 공동체의 경험으로 승화시키거나 혹은 확장하는 것이다
 
여러분 시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전에도 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시적 감수성에 사로 잡혀 가지고 자기 마음을 시로 읊었어요. 그런데 시 못 쓰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지요
 
자기의 마음을 다 드러냅니다. 드러내요.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느낌이 들도록 만드느냐 하면 그래서 어쩼다고 너는 그렇게 느꼈어 그러지 않아요
 
좋은 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면 그의 마음을 드러내면서 감추어야 합니다. 또 동시에 감추면서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시적인 언어라는 것이 함축적인 까닭이 거기에 있지요.
 
그런데 남김없이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시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해서 그럽니다. 사람들이 시를 읽는 것은 그 사람의 감정이 어떤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어요 그 시를 읽음으로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시를 읽지 않아요. 아니어요.
 
그러니까 개인적인 감상속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여러분 관심이 자기에만 집중되는 것을 우리는 감상주의라고 해 감상주의에 빠졌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이 경험을 공동체의 경험으로 만들었을 때는 이 경험이 확장되어서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 자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은 역사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주로 사용했던 말은 무엇이냐 하면 기억하라는 말이어요. 출애굽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너희는 무엇 무엇을 기억하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기념하라 기억하라 그렇게 말하지요
 
그러면 여러분 성서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통해 진실을 들려주거든요 출애굽 이야기 유월절 이야기 이런 것들이 이야기지 않아요. 이야기 그런데 이 이야기는 내가 아버지여요 그래서 여러분이 만약에 내 자녀라고 한다면 유월절날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막네가 나에게 묻는 것이어요. 아버지 오늘 이 밤이 다른 밤과 다른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물어요 그러면 아버지가 이야기 합니다. 오늘이 유월절인데 유월절이란 그러면서 여러분 유월절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들려줍니다.
 
이야기지요 그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여기에 있는 자녀들은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지요 이야기는 정체성과 관련이 되는 구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요.
 
바로 그래서 기억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된다는 이야기가 출애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나의 이야기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성서에 한 부분에 속해 있음을 자기가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고 할 때 우리는 텍스트 삼아 읽지만 유대인들은 자기 이야기로 읽는 것이야 왜 기억하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 그리스 사람들은 개념을 통해서 진실을 만들어 냅니다.
 
여러 가지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히브리인들은 이야기를 통해서만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전달이 되어야 해요. 이야기는 기억되어야 합니다. 기억되는 순간 나와 무관하지 않은 정체성이 생겨요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편 18편에 이 이야기도 다윗의 개인의 경험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나중에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 시를 낭송하고 암송함을 통해서 다윗이 이런 어려움을 극복했던 것처럼 우리도 결국은 극복해 낼 수 있다는 힘을 얻었을 것이어요
 
그래서 이 시가 여기에 들어와 있는 것이어요 여러분 시 전체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1. 1절부터 3절까지 읽어 주세요
1절에 보니까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하고 지금 고백하고 있지요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리고 나서 2절에 보니까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세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시로다고 합니다.
 
여러분 글 쓰는 사람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반복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글 쓰는 이는 고민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꿔내는 것이야 의미는 갖지만 다른 말로 바꾸어 내지요
 
여기 보니까 유난히 자주 반복되는 게 나는 나의 나의 그러니까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요세시요 건지시는이시요 하나님이시요 그래도 되지 않아요
 
그런데 나의라고 하는 소유격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냥 쭉 만약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요세시오 이렇게 하면 읽는 사람들이 마치 노랫말이 흘러가는 것처럼 죽 흘러갈 것이야
 
그런데치 단절을 만든 것이야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세시오 이렇게 하면서 하나 하나의 고백이 진실한 고백인 지가 반복을 통해서 드러나지요 의도적인 서술이다
 
다양한 은유 반석 요세 건지시는 자 방패 구원의 뿔 산성 여러분 이게 전부 은유적인 언어들이지요 은유적인 언어입니다. 그러니까 빗대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전에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서술할 수 있는 말이 있나요 하나님을 온전히 하나님은 이런 분하고 규정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서 은유적으로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여러분의 은유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어요.
 
상훈씨 일평생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호와는 나의 심장이시오 심장 어떤 의미에서 심장이지요. 제가 심장이 않 좋거든요 저는 주님의 심장으로 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마음에 확 와 닿네요
 
그래서 한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여호와는 내게 어떤 분일까 하는 생각 어떤 분은 여호와는 나의 스승 그럴 수도 있어요 여호와는 나의 빛 그렇 수 있어요. 여호와는 나의 프레쉬 등대는 멀리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주님은 내 앞을 비추어 주세요 프레쉬 그러니까 주님은 나의 신선함 그런지 알았어요
 
저는 여호와는 나의 이불과 베게시오 이불과 베게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이 좀 오는데요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괜찮아요.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을 자기의 언어로 한번 설명해 보는 것이어요
 
왜냐 하면 인생사의 어려움을 느낄 때 마다 그런 단어들 하나가 우리를 일어서게 만들기도 해요 때때로 그런 단어를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거룩한 단어라고 이야기해요. 세이크레이드 워드입니다.
 
내 인생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 내가 하나님에 그 단어를 입에 읖조리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바로 설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은유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은유를 가지고 기도를 한번 해 보세요
 
상훈씨 같은 경우 여호와는 나의 심장 정말로 그렇게 이야기 했을 때 나의 마음이 뜨거워 질 것 같아 언제나 여호와는 나의 이불 그러면 미란씨가 인생에서 시린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나를 덮어 주시는 하나님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레쉬도 마찬 가지여요
 
그렇게 해서 성경에 자기 나름대로 은유를 가지고 내 삶이 정신이 없고 중심이 안 잡히고 내 마음속에서 마음이 막 흩어져 있을 때 그 단어 하나를 하는 것이지요. 나의 심장 나의 이불 그럴 때 내 마음이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말들어 주지요.
 
이 시인은 지금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오 이야기 한 다음에 그 힘에 대한 다양한 변조로 다양한 표현들로 만들어 주고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다고 하는 사실은 무엇이냐 하면 그의 삶이 그만큼 곤고했음을 보여주어요.
 
정말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기에 그 어려움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런 표현들을 만들어 주고 있지요
 
그러면 이 시인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큰지 보아야 할 것인데요
 
2. 4절부터 6절까지 한번 읽어 주세요
여기에 보니까 굉장히 많은 어려움들을 겪는데 사망의 줄 불의의 창수 창수가 무엇이어요.
 
밑에는 비루한 창일이 그렇게 이야기 하지요 창수라고 하는 것 홍수 물 같은 것 너무나 많은 물 넘치는 물 그렇게 보면 되겠습니다.
 
보니까 사망의 줄 그렇지요 그 다음에 불의의 창수 그렇게 말하는 데 또 스올의 줄 사망의 올무 4절과 5절 사이에 이 시인을 괴롭힌 것들이 은유적으로 4가지로 나오고 있는데 사망의 줄 불의 창수 스올의 줄 사망의 올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창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리는 혼돈의 물이라고 생각하면 되어요. 여러분 아시지요 창조 이야기에서 세상이 혼돈에 차 있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지요 이 혼돈의 물을 궁창을 집어 넣으셨어요. 그렇게 해서 들어 올립니다.
 
이것을 이렇게 해서 궁창이 나뉘어서 공간이 생겼어요. 그래서 땅 아래의 물이고 여기는 땅 위에 있는 물이었습니다. 하늘위에 있는 물이지요 혼돈이 이렇게 나뉘어졌어요.
 
그런데 여러분 노아 시대에 홍수가 세상을 삼켰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때 표현을 보면 땅에 샘이 열리고 하늘에 창문이 열리다 그래서 비가 쏟아지고 여기에서 갇혀 있었던 물들이 솟구쳐 올라왔어 그 이야기는 무엇이지요 하나님에 의해서 질서 있게 나누어진 혼돈의 다시 혼돈의 물이 합쳐졌어 혼돈이 삼켜 버린 것이어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지금 이 시인이 경험하고 있는 것 다양한 표현입니다마는 사망의 줄 사망이 나를 얽어 맨 것 처럼 보여요 불의의 창수 불의라는 것 이따금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쓰나미 처럼 확 밀려 세상에 선한 것 없어
 
그런것 스올의 줄 스올은 지하 세계를 이야기 하지 않아요 죽음의 세계입니다. 그것이 나를 두루고 사망의 올무 덫이지요 그게 내게 이르렀도다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개역 성경은 이 표현의 역동성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저는 봅니다. 차라리 새 번역 성경이 훨씬 더 깊이 다가와요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사망의 줄이 나를 휘감고 불의한 물이 나를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덮치고 스올의 줄이 나를 동여 묶고 그리고 사망의 줄이 나를 낚았다 혹은 덮쳤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굉장히 다양한 표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고통이 다가 왔을 때 불의의 창수가 몰려오니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이지요 부르짖을 수 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수 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내 소리를 들으셨음이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는 것이어요. 이것이 희망이지요 성도들에게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사실
 
하나님의 들으심은 즉각 무엇과 연결되는지 아세요
보며는요 부르짖음 이것이 하나님의 들으심이 되고요
이것은 무엇이지요 하나님의 즉각적인 행동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
 
그러면 여러분 7절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7절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있는대요
 
3. 7절부터 15절까지 읽어 주세요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장면을 지금 설명하고 있는데 굉장하지요 우주적 사건들이 막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 등장하고 있는 이미지를 보면 땅에 진동 코에서 나오는 연기 입의 불 그룹과 바람 날개 우레 소리 우박 숯불 화살 번개 물 밑이 들어남 이런 것들이 나타납니다.
 
천재지변 같은 것 정신이 하나도 없지요 바로 그 이야기인데 하나님이 지금 개입하시는 모습을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 폭포가 떨어지는 것 같은 문장 속에 표현을 하고 있어요. 폭포가 떨어질 때 거침없이 떨어져요
 
하나님이 고난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고난 당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 개입하는 모습이 폭포가 떨어지듯이 거침이 없음을 여기에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힘이 지금 등장하고 있지요. 이것 하나 하나 다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공격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침해로 여기시기 때문에 온 우주가 지금 흔들리면서 거기에 개입하십니다. 압도적인 이미지가 여기에 주어지고 있지요 아주 강력합니다.
 
사실 시간이 많으면 하나 하나 체크 해 보면 좋은 데 다 할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개입을 하시게 되자 결국 어떻게 되느냐 하면
 
4. 16절부터 19절까지 읽어 주세요
16절부터 보니까 그 압도적으로 지금 세상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이 이제 그의 종을 구원하시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것을 일인칭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건짐을 받았는지 이야기 하고 있어요. 거대한 물살이 덮쳐오듯이 마치 쏟아지는 폭풍과 기름 부음 자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지요
 
재앙의 날에 하나님이 의지가 되신다 재앙의 날에 그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신다 그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아름답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시인은 무엇이라고 고백하느냐 하면
나는 이제 그런 주님의 구원을 경험 했기 때문에
 
20절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상을 주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읽지는 않겠습니다.
 
여호와의 도를 내가 지켰다 하나님을 내가 떠나지 않았다 율법과 규례와 율례를 버리지 않았다 죄악에서 스스로를 지켰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하였더니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어요 하나님이 그 언약대로 자비로운 사람에게 자비로움을 보여 주시고 완전한 자에게 완전함을 나타내시고 깨끗한 자에게 깨끗함을 보이시고 사악한 자에게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신다 하는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결국은 무엇이냐 하면 종말론적인 상황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삶속에 개입하셔서 무너졌던 질서를 바로 잡아 주실 것이다. 이것이 이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질서를 흔들어 놓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그래서 이 질서가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결국 개입하셔서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아 놓으신다 이것이 이 시인의 확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27절을 보면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이렇게 말하는 데 여기 히브리어 보면 어떤 말이 생략되어 있느냐 하면 왜냐 하면 당신은 그런 말이 생략이 됩니다. 왜냐 하면 당신은 곤고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28절에도 보면 왜냐 하면 당신은 등불을 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 하면 나오고 있는데 이게 생략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강력합니다. 왜냐 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요. 세상의 불의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뒤죽박죽의 질서를 바로 잡은 것이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바로 그렇게 된다
 
여러분 이런 확신이 있으면 우리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인이 보여주는 것은 그러한 든든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완전한 아름다운 고백 30절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안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심이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일 고마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속에 개입하시기 위해서 온 우주와 함께 폭포가 쏟아지듯 우리의 삶속에 개입하셔서 우리를 구원해 내시는 데 그 다음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아이구 내 새끼 얼마나 고생했어 이러지 않아요 어떻게 하느냐 다시 그를 무장 시켜 주셔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주신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31절부터 나오는 이야기 인대요
32절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33절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높은 곳에 세우시며 등등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개입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지요. 그러면 구원 받음의 자리에 그냥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그 다음에 하시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구원 받은 자에게 하나님의 선한 싸움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으시고 그를 무엇으로 만드시느냐 하면 전사로 삼으셔요
 
하나님은 그 백성을 전사로 만드셔요 하나님의 군대로 만드셔요. 출애굽기 이야기를 보면 홍해를 건너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하십니다. 열가지 재앙을 가지고 애굽을 치시고 홍해를 건널 때도 백성이 다 지나간 다음에 애굽의 바로의 군대와 병거가 바다에 들어오자 물이 덮여 가지고 그들이 죽도록 만들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홍해를 건너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인가 하기를 하시기 원하십니다.
 
그 때 나왔던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냐 하면 아말렉이라는 부족이 처들어 오거든요. 그 때 하나님이 너희 가만히 있어 그리고 치실 것 같은데 그렇게 안 하시오. 어떻게 했습니까?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있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잡고 있고 누가 전쟁에 나갑니까? 여호수아가 군대를 이끌고 나가 전투를 시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무엇을 시키느냐 하면 구원 받고 만족하는 응석바지 아이의 단계에 비해서 자기의 삶에 대해서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기를 하나님은 원하셔요.
 
구원함을 경함 사람들이 꼭 가져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사라고 하는 말이 너무 강력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된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어려우니 나를 도와주세요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제 그 구원함을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 저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저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해야할 마땅할 일 내게 명령해 주십시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하실 때 능력도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러니까 신앙의 단계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너무 곤고하고 힘드니까 견딜 수가 없어요 부르짖을 수 밖에 없어 이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를 위해서 개입하지지요 그것도 압도적인 개입이었어요 구원 받아서 너무 행복했어 나는 여호와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고 살 것이야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은 나는 너를 전사로 삼아서 그래서 무장 시켜 주시고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가 있단 말이어요.
 
에베소서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몸을 가리고 있는 방어 무기도 있고 공격 무기도 있단 말이지요. 여러분 각자에게 그런 것 있는 것 알아요.
 
하나님이 주신 무기가 있지요. 우리는 유모어도 있고 유머에 대한 해석도 뛰어나고 잘 받아주고 굉장히 좋은 분위기입니다.
 
그러니까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데
(1) 하나는 내가 주님을 믿는 것 주님이 나의 의지이지요 반석이고요
(2) 그런데 믿음이 성숙해 지면 하나님이 나를 믿으시는 것을 알아야 해요.
하나님이 나를 신뢰해 주셔 내가 너를 믿어 너는 할 수 있어 왜냐 하면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그런 믿음을 주시는 까닭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요즈음 응석받이 어른들이 많은데 누군가가 다 자기 일을 해 주어야 하는 그렇지요
 
좋은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아이를 교육 시킬 때 안타깝다고 해 가지고 아이들이 해 줄 일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그 아이가 어려움을 겪더라도 자기 일을 해결해 가도록 버려두지요 다만 부모님이 하시는 일은 안타까워 바라보는 것이어요 어떤 때는 지치지 않도록 과일도 갂아 주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지거든요.
 
여러분 이편 18편은 바로 이렇게 성장해 가고 있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완전히 승리를 거두실 것을 그는 알고 있어요

 

 
46절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오지요 여호와는 살아계시니 하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이게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하고 이야기 하지만 여호와는 살아계시다 선언입니다.
이 한마디를 얻기 위해서 이 시인은 그렇게 긴 세월을 고통 받았는지 모릅니다.
자기의 삶을 다 돌아보면서 그가 할 수 있는 인생에 한마디 말 그것이 무엇이냐 여호와는 살아계시다 이 한마디 말을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그의 인생의 결론으로 여호와는 살아계시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내가 반석이신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이방나라 중에서도 주님의 이름이 찬양 되기를 소원하고 있고요 후손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노래합니다.
 
여러분 이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여호와는 살아 계시다 이 한마디 말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승리한 인생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전사로 성장해 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저작권자 ©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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