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제 1강 스바냐 1: 1- 6 두려운 경고

기사승인 2020.12.02  11:14:59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오늘부터 우리가 공부하는 책은 스바냐를 공부하게 됩니다 지난주 까지 하박국 공부를 했고 스바냐를 공부하는데 스바냐는 익숙하지 않은 책인 것 같아요 스바냐를 본문으로 설교한 들은 기억들이 있는지요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에 들은 기억이 있다면 그 노래 때문에 스바냐서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이시라 스바냐 3장 17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구절로 스바냐를 기억하기 때문에 스바냐는 굉장히 따뜻한 사람인처럼 느껴 집니다 스바냐 전체 내용은 그렇지 안해요 어두운 터널을 지난 다음에 나오는 고백이기 때문에 그것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창세기의 첫 머리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베푸시지요 창세기 1장 28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것은 생명이 점점 번져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떠 올리게 하여주지요
 
그런데 스바냐서는 2절부터 무엇이냐하면 멸절하라 이야기합니다
사실은 여호와의 날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런 구절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스바냐가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1장 1절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아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아몬의 아들 유다왕 요시아의 시대에고 하고 있습니다 아몬의 유다왕 요시아의 시대라고 말하는 데 요시아 시대는 앗시리아가 멸망하기 직전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앗수리아의 세력이 약화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었고 아직은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큰 세력을 얻지 못한 세대입니다
 
특별히 요시아 하면 유다의 임금 가운데 기억되는 분 가운데 이분들은 괜찮은 분이었어 기억되는 분이 몇 명이 있어요 요시아도 그렇고 히스기야도 이런 분들이 종교 개혁을 단행한 사람들입니다
 
우상 숭배를 멀리하고 야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순수성을 심어 주기 위해서 애 쓰는 사람으로 기억이 날 것이어요 왜냐하면 요시아는 임금이 된지 18년이 되던 해에 개혁을 단행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성전을 수리하도록 시켰는데 성전을 수리하던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요 그 동안 잊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그것을 임금에게 가지고 오거든요
 
왕하 22장 8절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훌다라는 예언자가 여기 모든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왕하 22장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왕이 읽은 모든 말대로 하리니
 
요시아는 정말 참회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신실하지 못하였는가 하고 종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우상 숭배하던 사람들을 우상 숭배를 금할 것을 요구하고 여러 가지 조치들을 취합니다
 
왕하 24장 4절 바알과 아세라의 목상들을 찍어 버리고 불 살라 버리고 일월 성신을 섬기는 풍조가 이스라엘도 들어와 있었는데
왕하 23장 5절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찍어 버리고 일월성신을 섬기는 풍조가 들어와 있었는데 그러한 기구들을 분향단을 폐하고 산당들을 폐하고 아스다롯과 밀골과 제사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산당들을 다 폐하여 버리고 사람들이 다른 종교를 갖지 못하도록 조치를 합니다
 
왕하 23장 13절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 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사람들이 그 우상들에게만 자기 마음을 바친 것이 아니고 야훼 하나님에 대해서도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 숭배를 해요 이런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혼합주의 섞는 것이야
 
사실은 이런 혼합주의적인 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교회에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신앙의 내용은 우상 숭배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은 모두가 연약하기 때문에 복을 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우리가 아프면 하나님 낫게 해 주세요 내가 인생의 곤경을 만나면 이 어려움에서 해결해 주세요 당연해 하나님께 청하는 것은 그러나 그것만이 신앙의 목표인것 처럼 생각하면 일종의 우상 숭배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더 성숙해 져야 되지요 우리의 신앙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기시를 바라는 것도 신앙이지만 그러나 더 깊은 신앙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더 깊은 믿음이어요
 
그 자리까지 성장해 가야되지요 그러지 못하고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느냐 하면 나 혼자 먹고 싶은데 나누어 먹어야 돼 그러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런 삶을 요구를 하신단 말이어요
 
하나님이 요구하는 거룩한 삶이라고 하는 게 다른 게 없습니다 그런 삶이어요
하나님이 창조한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아가지 못할 때 우리가 그의 설 땅이 되어 주기를 하나님은 바라셔요
 
내가 누군가에게 책임적 존재가 되어야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가 사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다 버리고 나의 문제만 해결되기를 바랄 때 자칫하면 우리가 혼합 주의적인 신앙에 빠지기 쉽겠다하는 이야기여요
 
예레미야는 그런 노력을 요시아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예레미야 22장 15절 정의와 공의를 하나님의 세계가 타원형의 두 가지의 초점 정의와 공의 이것이 무너진 예레미야의 평가에 의하면
 
이 예레미야의 평가에 의하면 요시아 임금은 정의와 공의를 행한 임금이다 정의와 공의 세웠다는 말을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했다 그 말입니다 힘 있는 사람들만 뒷 받침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힘있는 짓눌리고 그들의 살 권리를 뒷 받침해 주었다 요시아의 통치입니다
 
그 시대에 스바냐가 등장했다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몬의 아들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경에 다른 곳에는 안 나옵니다 매우 어려운 분입니다 그를 소개하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요하고 말합니다
 
굉장히 길게 소개를 하고 있지요 보통 누구의 아들 아버지가 소개 되는 데 고조 할아버지까지 이렇게 4대까지 이야기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됩니다
4대를 불러 주시겠어요 히스기야 아마랴 그다랴 구시 이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에 보면 그 다음에 스바냐이지요
이게 다 야 랴 랴 냐 어떤 모음의 특색들이 보입니다 대게 저 글자는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이지요 하나님과 관련된 단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야훼 이름이어요
 
그 이름들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는 어떤 뜻이냐 하면 야웨께서 강하게 하셨다 아마랴는 야훼께서 약속하셨다 그다랴는 야훼께서 위대하시다 이게 전부 하나님과 관련된 그런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집안이 대단해요 구시가 문제야 야나 냐가 없어 그런데 이름에 있는 저런 특색들을 보니까 사실은 구시라고 하는 것은 구스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스바냐의 아버지는 어쩌면 구스 땅으로 이주하여 살았던 사람일 수도 있고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어떤지 어쩼던 조상들의 길게 언급된 까닭이 무엇이야 하면 구시의 아들하면 왠지 이방적 배경을 가진 것 처럼 아들도 사람들에게 전통성을 인적 받기 어려워 예언자들을 이야기할 때 4대까지 거슬려 가면서 뿌리 깊은 집안이야 아닐까 보게 됩니다
 
이 구시라고 하는 분의 불필요한 오해 때문에 스바냐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조차도 사람들이 별 것 아닌것 처럼 여길까봐 그래서 이렇게 의도적으로 4대까지 거슬려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히스기야는 우리가 알고 임금 일 수도 있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스바냐는 설명 안해 그 임금님이 고조 할아버지다 안해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는 것이어요 임금님 아닐까 가타 부타 이야기를 안해 무엇인가 의도적이라 볼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의 이름이 조상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이 자아내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 시키기 위해서 4대까지 거슬려서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볼 수가 있습니다
 
스바냐라고 하는 뜻은 다른 이름들은 이야기 했지요 히스기야 야훼께서 강하게 하셨다 아마랴 야훼께서 약속하셨다 스바냐의 뜻은 야훼께서 위대하다 스바냐의 뜻은 야웨께서 감추셨다 이런 의미로 풀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언자의 이름속에 메시지가 이미 담겨 있어요 어떤 의미이냐 하면
(1) 환난날에 야훼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위험으로부터 감추어 주셨다 그런 이름일 수 있는 것이지요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숨겨 놓으셨다
 
그 말은 긍정적으로 본 이야기 이고 달리도 볼 수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 쌓아 두셨다 보이지 곳에 쌓아 주셨어
무엇이냐 백성들의 죄를 그 때 그 때 처벌하지 않고 쌓아 주셔 때가 이르면 칠려고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장 12절 끝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등불을 들고 죄 지은 사람들을 벌하기 위해 찾아가는 하나님의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등불을 들고 죄인들을 찾아가는 하나님의 이미지 이것도 한번 형상화 해 볼만 하겠지요 실지로 프랑스의 어느 성당에는 그렇게 이미지화 되어 있는 하나님의 상이 있다고 해요 죄를 찾아가시는 그 모습으로 보이는데 사실 이렇게 죄인들을 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습은 사실은 그리스 비극에도 등장하거든요
 
아리스킬로스 자비로운 여신들이라는 작품을 보면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어머니를 죽이는 오레스테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버지인 아가멥논을 죽였어요 아들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엄마를 죽입니다
 
그런데 윤리적으로 아들이 어머니를 죽일 수 없어 달아 납니다 정의이의 여신이 따라가요 오레스테스를 코러스로 말합니다 그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손을 매미는 자에게는 결코 우리의 노여움이 다가가지 않으리 그는 무사히 인생을 통과할 수 있다네 그러나 여기 이 자처럼 죄를 짓고는 피 묻은 손을 감추는 경우 우리는 정직한 증인으로서 피살자를 돕기 위해 나타나시는 결국 그 자에게 우리가 유혈의 복수자임을 보여주게 되리라
 
이게 정의의 여신들 이야기입니다 어떻던 어떤 문화 속에서도 죄 지은자는 벌을 받게 되어 있다고 하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죄 지은 자에게는 등불을 켜 들고 찾아다니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3절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띵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진멸하고 멸절시키고 무서운 말입니다 진멸하고 멸절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요 그러니까 엄중한 심판이 이 땅에 올 것이다 예언자의 언어는 처음부터 따뜻하게 안 갑니다 우리가 짓고 있는 죄의 값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한 유보 없는 단호한 태도를 말합니다
 
이 세상 망할 수 밖에 없어 사람 뿐만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것을 하나님은 어떤 시대를 상기 시키지요 노아의 홍수 시대를 우리에게 떠 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모든 생명들이 다 죽어가는 이 광경은 머리 속에 그려 보기만 해도 묵시 문학적 광경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묵시 묵학적 광경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지요 가난에 내 몰린 사람들 전쟁과 테러 공포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종말이 온 것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절 거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진멸하신다 결국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우상들에 대한 심판을 수행할 것이아
 
종교조차도 자칫 잘못하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자랑스러워 하고 기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우리 교회만 진리가 있어 이렇게 말하면 맞아요 틀려요 안 되어요
 
다른 교회는 어떻게 되든지 우리 교회 그래서 남의 교회 교인에게 가 가지고 우리 교회 가자 가자 우리 목사님 설교가 최고야 이런데다든지 우리 교회 친교가 최고야 이러면서 자기 교회를 이렇게 우상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때로 종교나 교회가 우상이 되어서 사람들이 진리이신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을 가로 막올 때도 믾이 있습니다 그릇된 신념 특정인데 대한 맹목적 지지 그 속에 있으면 안 보여 그분이 어떤 모습인지 그가 어떻게 우상이 되고 있는지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를 사람들이 우상화 하려고 할 때 한사코 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해 그 영혼이 자기를 우상 처럼 떠 받드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야 이미 이게 중요하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 목사님 좋아 그것 까지는 좋아 그분이 정말 애들 하는 속된 말로 하나님하고 동기동창인 것처럼 그렇게 그분 아니고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 다 형편 없는 것 처럼 이야기 하는 것 이것이 철저한 우상화라고 볼수 있어요
 
정현종 선생님이 우상화는 죽음이니 시를 썼는데
우상화는 죽음이니 우상화 하지 말라 위대하신 누구이든 우상화 법석 속에서는 우상도 시체요 우상화하는 사람들도 시체이니 제발 우상화하지 말라 그저 좋아하고 그저 사랑하고 사뭇 찬탄은 할이로되 섬기지는 말아야지 우상은 암이요 우상화는 에이즈요 하여간 전면적인 죽음이니 사람이든 사상이든 그 무엇이든 하나밖에 없으면 말할 나위 없이 전면적인 죽음이니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든 사상이든 그것을 우상화 하는 순간 자유가 없어져요 자유롭게 사고할 수 없게 돼 교회 다니는 이는 특정인을 우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우상으로 사람으로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한사코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야 영혼이 망할 수 밖에 없어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 모든 생명들 그리고 거치게 하는 것 다 없에고 그 다음에 악인들 까지도 진멸할 것이라고 합니다
 
악인들은 간단해요 악이라고 하는 글자가 버금아 밑에 마음 심자가 있는데 타자에게 무덤을 안겨 주려는 마음이어요 누군가에게 무덤을 안겨 주려는 마음 무덤을 안겨 주는 것은 누군가를 생명을 가진 존엄한 주체로 바라보지 않고 그를 무생물 취급하는 것이야 인격이 없는 취급을 하는 것이어요
 
악인은 악한 행위를 가장 젊잖은 사람도 악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젊잖아요 사람 취급을 안해요 겉으로 비추어진 모습은 아주 괜찮아요 그런데 그 마음속에 교만함이 가득차 있어요 아랫 사람들을 하대하고 그가 악인이어요
 
그 사람이 법적인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해요 그런 사람이 악인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격멸한다고 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격멸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정말 기독교인들이 하지 말아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나하고 생가깅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해 가지고 그 사람을 격멸하고 혐오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받은 사람을 격멸하는 일은 결국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격멸하는 일이다 창조조 하나님의 격멸이어요
 
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있어 그 때 겸허하게 하나님은 이 일은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여쭙데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게 기독교인들의 마땅한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 있는 것도 그렇고 땅에 있는 것 사람과 징승 바다의 고기 모든 것들을 멸절하는 데 결국은 그 모든 일들이 공중의 새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바다의 물고기가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켜서도 아니고 그렇지 않아요
 
이 모든 심판이 누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어요 사람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것이 슬픈일입니다 공중의 새가 무엇 잘못 저지르면 얼마나 잘못 저지르겠어 가다가 가끔 똥 싸지요 바다의 물고기가 무엇 잘못을 저지르겠어요 자기들에게 주어져 있는 본능대로 사는 것이니까
 
지금 결국은 하늘도 오염되어 있고 바다도 오염되어 있고 백화 현상이 일어나고 전부 물고기가 만든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공의와 정의를 버리고 하늘과 바다와 강의 오염으로 나타나고 그 생명들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지요
 
그러므로 인간이 반성해야 될 부분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이야기 한 기억이 있는대요 어떤 생물학자가 하는 이야기여요
 
세상의 생명의 구조라는 것이 이렇게 되어 있데요 생산자가 있고 소비자가 있고 분해자가 있어요 이 지구상에 생산자는 무엇이냐 하면 식물 세계입니다 식물들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영양분과 물기를 받아 드리고 광합성을 하면서 잎도 만들고 열매를 만들어서 먹게 해 주어요 이들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소비자는 동물입니다 동물들 가운데서 가장 큰 소비를 하는 것은 누구이냐 하면 인간입니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식물이든 다 죽어요 그렇지요 죽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끔찍한 일이지요 죽음은 복입니다
 
죽었을 때 시신이 그대로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가 땅에 묻히고 그러면 미생물들이 열심히 분해해 가지고 다 양분으로 돌려놓습니다 그것을 식물이 먹고 새로운 것을 생산해 내지요
 
그러니까 정말 내가 빚지고 살고 있구나 내가 이 우주 가운데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존재이구나 하는 생각을 품어야 돼 그렇지요 내가 잘난체 해 보아도 이 친구들이 없으면 살 수 없어요
 
어떤 분이 이야기하지요 한 숯가락 흙속에 미생물이 수 억마리여 이 애들 덕분이 인간이 산다고 인간을 함부로 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알고 살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모든 것들을 진멸하라고 하는 것은 인간 때문이야 공중의 새와 물고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피조 세계가 실판을 받고 있는 이것을 생태학적으로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더욱 더 적실하게 느깨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4절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절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6절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멸절하리라 누군가를 향하여 손을 펴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내고 있는데요 여러분 손을 펴신다고 하는 것은 모세가 출애굽기 당시에 손을 펴시므로 열가지의 재앙을 내리셨고 모세가 지팡이를 내 밀므로 바다가 갈라진 것 처럼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4장 16절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위로 내 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하나님의 권능을 멸정의 대상은 모든 피조물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특별히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축소해 갑니다 죄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 점점 유추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남아 있는 바알을 철저히 끊겠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바알을 끊겠다는 말은 바알만 끊겠다는 말이 아니라 바알로 상징되는 모든 우상을 끊겠다 바알이라는 것이 바알의 영향력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 어떤 것이 바알의 영향력이냐 하면 다른 것이 없습니다
 
바알을 믿는 신앙과 야훼를 믿는 신앙의 기초가 달라요 바알은 욕망을 자기의 중심에 놓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까닭이 내게 다산과 복을 달라고 해요 욕망입니다 야훼를 믿는 사람들은 자기 욕망에 따라서 믿는 것이 아니어요 경외심입니다
 
욕망은 늘 이야기하지만 배타적이어요 내 배고픈 사정만 알고 저 사람 배고픈 사정은 잘 몰라요 욕망은 배타적이어요 배타적이기 때문에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경쟁적이어야 해요 경쟁한다고 하는 것은 타자 부정이야
 
그런데 경외심을 가지고 산다고 하는 말은 나라고 하는 존재도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저 사람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 삶을 살펴보기 때문에 포용적입니다 경쟁적이 아니라 협력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 결과는 타자 부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의 존재의 바탕이 되어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느 것을 내 삶의 원리로 사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인생이 되는 데 사람들은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것을 떨쳐 버리겠다
 
지금도 똑 같습니다 욕망을 바탕을 두고 사는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악마적인 것인지 보여 주깁니다 욕망을 바탕을 사는 삶입니다
 
골로세 3장 2절 위엣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
욕망을 바탕을 추구하는 삶이 아닙니다 위엣 겻을 생각하고 그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5절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의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치시겠다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마림을 치시고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치시고 여호와께 맹세하면서도 말감에게도 맹세하는 자들 혼합주의 자들 그들을 하나님이 치신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않는자들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고 따르지 않는자를 하나님이 멸절할 것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 것은 자기의 삶을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을 자꾸만 접속해 그럴 때 어떻게 됩니까? 접속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길을 묻는 것이어요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길을 묻는것이어요 하나님께 길을 묻는다는 이야기는 나 좋을 대로 안 한다는 것이어요 나 좋을대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길을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을 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어떤 일을 하실까 하는 설레는 기대를 가지고 사는 것이지요
믿음의 사람들은 결국 어떤 사람들입니까? 자기의 정체성의 뿌리를 과거에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의 새로운 세상에 꿈 거기에 사로 잡혀 사는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시내산 앞에서 하나님이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실 때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지요
출애굽기 19장 6절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꿈을 주시지요
 
제사장 나라야 그들이 언제는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감을 보여 주고 있어요 정체성의 근거가 과거에 있지 않고 실현의 가치에 있는 것이 믿음의 삶이다 그게 바로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야 됩니다
발터 베냐민이라고 하는 독일의 사상가는 이렇ㄱ 이야기 하는 EDY 구원이라는 것은 역사에 대한 초월성의 침입니다 이런 말을 해요
 
역사라고 하는게 내제적으로 발전을 해 가지고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고 이 발터베냐민이 하는 이야기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엇하는 사람이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이 속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에 침입해 들어오기 시작할 때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푸른초장선교회 대표

조무웅 강도사 www.cry.or.kr

<저작권자 ©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default_setImage2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