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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사승인 2020.11.11  08: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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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9-10)
 
 
1.
통계를 한 번 내 보았습니다. 2015년부터 올 2020년까지 등록한 새 가족이 얼마나 되는지. 이 기간 동안 등록한 새 가족들은 우리가 전도해서 등록한 분들은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우리 교회에 찾아오셨고, 한 동안 그냥 교회 다니시다가 등록한 분들입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 교회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몰두하던 전투적, 공격적 전도 운동이 가져온 부작용을 잘 알기에 조용한 관계전도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등록조차 권하지 않고, 본인이 때가 되어 자발적으로 등록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런 자세로 목회를 하니 다른 교회가 볼 때 왕십리중앙교회는 앞날이 뻔하다고, 전도 전도해도 위축되는 형편인데 저렇게 전도 안 하다가 어찌될는지 걱정된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래서 살펴보았습니다. 2015년부터 올해까지 등록한 새가족은 총 219명이고, 그 중 정착한 분들이 196명이며, 중도 탈락한 분들이 23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교회의 구성원 1/3이 새로운 가족들로 바뀐 것입니다. 공격적인 전도 정책을 취하지 않음에도 하나님께서 많은 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왕중교회에 베푸신 은혜인 줄 믿습니다.
 
2.
그런데 이렇게 우리 교회를 찾아온 분들 중에 우리교회가 조금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 있답니다. 주기도문입니다. 알고 계시죠?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시며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이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암송하며 뜻을 새기며 실천해야 하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입니다.
 
군대 갔을 때, 훈련소에서 주일이면 사역을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가는 훈련병은 제외시켜 주었습니다. 그러자 ‘교회 갈 사람 집합!’하자 많은 훈련병들이 몰려나왔습니다. 사역 나가기 싫은 사람들까지 대거 몰려나온 것입니다. 그러자 조교가 한 사람 씩 불러다가 이거 진짜 예수쟁이인지 시험을 합니다. 뭘로 했을까요? 주기도문을 외워봐 하더라구요. 그리스도인은 주기도문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죠? 이토록 중요한 주기도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주기도문은 성경에 두 곳 나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 나옵니다.
 
오늘 본문을 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물론 이 뒤에도 계속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주기도문 앞부분, 바로 9절과 10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에서 이 부분의 주기도문을 이렇게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뭐가 달라진 걸까요? 뭐 어차피 번역물이기에 약간의 경어나, 토씨, 조사가 다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주기도문과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는 눈에 확 띄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는 아버지가 호칭으로 한 번 밖에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한 번입니다. 그런데 개정된 주기도문엔 이 호칭 뒤를 이어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이라고 해서 3번이나 더 ‘아버지’란 단어가 나옵니다. 물론 헬라어 단어에는 다 성(性)이 있기에 그 단어, ‘이름, 나라, 뜻’이 남성 명사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2007년도 교단 총회에서 결의할 때 새로운 주기도문을 제안하신 신학자, 목사님들이 본문의 뜻을 더욱 분명히 하고, 아버지란 친근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와 생각이 좀 다릅니다. 주기도문은 말 그대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기에 주님이 가르쳐 주신 그대로 함이 가장 좋습니다. 뜻이 애매하건 불확실하건 주님이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시며 가르쳐 주신 대로 함이 가장 좋습니다.
 
불필요한 ‘아버지’란 단어가 3번이나 더 들어간 것을 친근한 아버지 이미지로 그리 했다고 하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에서는 ‘아버지’란 단어의 이미지가 부정성(否定性)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어머니’란 단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임이 전 세계 공통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버지라는 단어는 무책임, 바람둥이, 냉정함, 폭력을 떠올릴 정도로 서구 사회에서는 부정적으로 변질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 하나님 이미지는 별로입니다.
 
세계 신학계에서도 일방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란 표현을 쓰면 체크 당합니다. 1999년 뉴욕 신학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쓸 때 곤경을 겪은 것이 우리는 너무 태연하게 ‘하나님 아버지’란 표현을 쓰는데, 이미 세계에선 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근거? 이렇게 교수들이 지적하더라구요. 하나님은 신(神)으로 남녀 성이 없는데 왜 하나님을 남성 신으로 국한 하느냐고. 그러면서 굳이 그 단어를 쓰고 싶으면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라고 양성(兩性)을 쓰거나 중성으로 쓰라고 지적하더라구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현실은 그러했습니다.
 
암튼 세계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교회만 ‘아버지’란 단어를 일부러 주기도문에 넣으므로 남성성을 강조하는 모양새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도 하나님 아버지란 표현을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론 그렇게 아버지로 고백하고 기도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공동체가 그렇게 고백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느낍니다. 사실 주기도문을 그렇게 번역하고 밀어붙인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내가 보기엔 상당히 가부장적(家父長的)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엔 분명히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가 아니라 원문대로 직역을 한다면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원어 주기도문엔 ‘아버지’가 없고, ‘당신, you’가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입니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 내가 고집을 부려서 성경에 있는 그전 주기도문을 우리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점점 우리 사회가 여성 중심의 사회로 전환되어 가며 성차별이 매우 예민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데, 언젠가 때가 되면 또 바뀔 것이기에 그냥 기존의 것을 사용합니다. 더군다나 이것을 모든 교회가 의무적으로 사용하라고 했으면 총회의 지시를 따랐겠지만, 내 기억으로 이건 권고 사항이기에 그리 했습니다. 여러분의 찬송가에도 두 가지가 다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택하라는 것입니다.
 
3.
자, 그건 그렇고, 오늘 설교하려고 하는 것은 이런 이론, 학설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에 들어 있는 매우 중요한 예수님의 뜻, 그 의도입니다. 제일 먼저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요? 하나님은 창조주, 섭리자, 심판주, 거룩하신 분, 정의로우신 분, ... 많은 수식어, 서술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한문으론 이걸 천부(天父)라고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것도 어떤 아버지이신 줄 아는가? 무서운 아버지? 잘못 하면 가차 없이 때리는 냉혹한 아버지? 매일 준 것들을 제대로 썼나 감시하는 아버지? 실망스러운 자식을 보고 매일 한숨 쉬는 아버지? 천만에! 예수님께서 그 하늘 아버지를 정확하게 소개하셨는데, 누가복음 15장에 나옵니다.
 
아버지 재산을 유산으로 달라고 하여 챙겨 가지고 제 멋대로 나가서 허랑방탕 다 탕진하고 알거지가 되어 돌아와도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시는 아버지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랍니다. 심지어 큰 아들, 경건하고 범생이고, 순종적이어서 모두가 칭찬하던 큰 아들이 다 까먹고 알거지가 되어 돌아온 동생을 못 마땅해 하는 것을 ‘아니다, 그래도 네 동생이다’ 하며 손을 잡아 주는 그 아버지, 사랑의 아버지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럼에도 하늘 아버지가 무섭다고요? 제대로 예수 안 믿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그런 아버지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자기 혼자 고집 부리며 하나님은 무섭다고 합니다. 아니라는 데도 아니라고 고집 부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사랑의 아버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러니 나는 그 아들로써, 그 아버지의 사랑을 온 몸에 받고 사는 아들로써 나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이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 뭡니까? 왕십리중앙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그래서 그랬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3가지 중요한 단어가 있다고. 뭘까요? 감동, 자유함, 그리고 헌신! 교회에는 무엇보다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억지로 코가 꿰어, 체면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오는 것도 감동을 기대하고, 예배드릴 때 성령의 감동이 가득하고, 교우들을 만날 때 사랑의 감동으로 정말 사랑하고, 무엇보다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십자가의 피가 나를 자유케 하고, 참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었다는 감동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곤 그 감동 속에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뭔가에 묶여 살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뭔가에 눌려 살던 자신이 예수의 십자가로 다 해결되었다는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이건 먹고, 저건 못 먹고, 이건 해도 되고, 저건 못 하고 하는 긴장된 이분법적 삶의 태도에서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주인 의식을 갖고 모든 얽매임에서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예수님이 주신 이 자유함, 이걸로 뭘 할까요? 이젠 맘대로, 내 멋대로 살까요? 천만에! 나의 이 소중한 자유함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을 향하고, 예수를 위해 살겠노라고 하는 참된 헌신의 삶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4.
예수 안에서 새 삶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들에게는 분명한 삶의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께서 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가르쳐 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이거는 반드시 가르쳐주고 싶다는, 그야말로 주님의 마음을 액기스화 하여 가르쳐 주신 것일 것입니다. 그게 뭔가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누가? 우리가! 물론 하나님이 하시지만, 우리를 통해서 하십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우리가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 분명합니다.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그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이 위대한 사명은 위대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고위 권력층, 지도층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영향력이 큰 사람들에게 주어진 게 아닙니다.
 
한 때 한국교회에서는 청년 사역을 하는 이들 중심으로 ‘고지전’이란 이론이 유행했습니다. 유능한 기독청년들이 사회에서 좋은 고지를 점령, 즉 출세하여 영향을 미치면 이 나라는 더욱 빨리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청년들보고 출세하라고,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부추겼습니다. 고시에 패스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고시를 통해 고위층에 올라간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인가요,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해서 좋은 고지를 점령하면 이루어지는 것인가요? 출세하고 돈 많이 벌고 인기를 얻고 고위층에 올라가면,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빨리 이루어지는가요?
 
웃기는 소리입니다. 장로가 최고의 권력 고지, 대통령이 되었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더라구요. 이런 고지전은 또 다른 형태의 세속 영광, 명예욕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나라, 하늘에선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선 특출한 몇 사람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살라’고 명을 받은 우리 같은 평범한 성도들이 실제로, 삶의 현장으로 가서 그렇게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이루어집니다.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말입니다.
 
이태리를 오페라의 나라라고 한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태리에선 걸 거리 청소부도 오페라 가곡 한 곡 쯤은 너끈히 부를 줄 안 답니다. 그래서 이태리가 오페라의 나라랍니다.
 
가서 그렇게 살라는 것은, 가서 착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서 이웃돕기 하며 살라는 게 아닙니다. 가서 혁명하며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 의미들도 다 있습니다.
 
그러나 가서 그렇게 살라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덕을 귀하게 여기고, 바른 생활의 가치를 지켜가며 착하게 사는 이들이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꾼들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오도록 일하는 일꾼들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다해야 합니다.
 
5.
우리에겐 삶의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좋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져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어디로 이어져야 합니다. 방향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디로? 하나님의 나라! 그것도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목표!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뭘 먹든지, 뭘 마시든지, 뭘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구요. 그러기 위해선 순간 순간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감동을 간구하십시오. 성령께선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거 가르쳐 주고, 인도하고 지키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 가서 그렇게 살라고 명을 받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돈에 눈이 멀고, 탐욕에 마음을 빼앗기고, 쾌락과 유흥에 손발을 털리고, 자존심 앞에 무릎 꿇고, 거짓과 싸울 때마다 늘 패배하는 이는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어렵습니다.
 
성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성령의 감동과 말씀에 순종하여 용기있게 살아야 합니다. 가서 이와 같이 사는 왕중가족에게 주의 축복이!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

양의섭 목사 www.cr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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